프랑스 육아에 관한 책을 다시 읽고 있지만 이제껏 프랑스 육아에 관한 책들과 실제로 프랑스 현지에서 육아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들을 정리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주 양육자로 필요한 내용들만 적어 놓는다.
육아를 준비하면서 한국 육아 서적은 거의 보지 않았다. 음... 뭐랄까, 그 흔한 삐뽀삐뽀나 발달 백과도 참고하지 않았다. 대신 대략적인 성장 발달 정보는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아기 수첩Le carnet de santé을 참고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한국식 육아 접근 방식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태어나서 첫 달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세 달까지 아이 발달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하는 것들, 대근육이니 소근육이니 하는 접근들이 무서웠다.
아이에게 반드시 해줘야 하는 몇몇 가지들만 충족하면
이외의 것들은 별 문제 삼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큰 몇 가지 규칙 이외에는 아이의 발달과정에서 부모가 관여하는 일은 많지 않다. 쪽쪽이la tétine를 몇 개월까지 끊어야 하기에 바셀린을 바르고, 야간 수유를 끊기 위해 아이의 수유 양을 조절하고, 기저귀를 떼기 위해 아이를 변기에 앉혀 놓고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내가 다니는 치과 의사의 아이는 만 4세인데 아직까지 공갈 젖꼭지를 물고 다니고, 만 3세 이상부터 다니는 학교에는 기저귀를 떼지 않은 상태로 아이들이 등교한다. 아이에게 반드시 해줘야 하는 몇몇 가지들만 충족하면 이외의 것들은 별 문제 삼지 않는다.
한국에서 유명한 몇몇 프랑스 육아 책들을 보면 프랑스 아이들은 그렇게 예의 바르고 공손하며 새로운 음식을 그렇게 잘 먹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마치 프랑스 육아에 특별한 교육 방법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프랑스 육아의 특별함은 부모들이 행복하다.
부모들이 행복하다
육아를 하면서 내가 닮고 싶은 프랑스 부모들의 모습이다. 프랑스 육아가 한국 육아보다 덜 힘들게 느껴지고, 덜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부모가 느끼는 책임의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해야 하는 일 한국보다 적다. 간단한 예로 아이 옷에 막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먹이는 것도 체계적으로 꼭 먹이지 않아도 된다. 물론 부모로서 갖게 되는 책임은 두 곳 모두 부담이라고 말하지만 그 양과 크기로 말하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 그게 꼭 사회적인 환경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래서인지 프랑스 부모들은 즐거워 보인다. 물론 다들 피곤하고, 바쁘고, 힘들지만, 집에 와서 먹이고, 씻기고, 숙제를 봐줘야 하는 대신, 아이들이랑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 이제는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되기도 했는데 아이에게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매일 경험한다. 부모인 나 또한 아이를 기다린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아이를 기다리는 훈련을 매일 한다. 기다림은 아이가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와 산책을 할 때, 놀이터에서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식사를 시작할 때나 식사를 끝 낼 때, 아이는 나를 기다리고 나는 아이를 기다린다. 이제는 '저녁 준비 해야 하니 기다려 줘'라고 말하면 제법 잘 기다린다. 가끔은 내가 보이는 가까운 곳에서 놀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녁 준비가 끝날 때까지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낸다.
기다릴 수 있는 아이들은 좌절감과 지루함에 대처할 수 있는 내부 자원을 개발한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즉시 얻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반갑지 않은 감정을 경험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작용한다. 감정에 휘둘려 폭발하거나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한다.
피가 나지 않으면 일어나지 마세요
양육을 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알지 못하는 위험이다. 사고는 어디에나 있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주의를 기울이고 주의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가 공원에서 내딛는 모든 발걸음을 예의주시하면서 감시하고 뒤 따라다니고 싶지 않다. 《French Twist》라는 책은 “피가 나지 않으면 일어나지 마세요.”라는 말이 첫 챕터에 등장한다. 아이는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아이에게 복종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려준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가 최대한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덜 간섭하고 덜 요구한다. 아이는 스스로 연습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결국 해낸다. 아이들은 그 사소한 과정을 겪어내고는 훈장을 달고 나타나 자랑을 한다. 이때 아이는 부모의 요구에 부응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한다. 이곳의 아이들은 이렇게 독립과 자립을 배운다.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온갖 사소한 것들을 알려주느라 바쁘다. 알려줄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지치고, 그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짜증 나고, 더 마음이 바빠진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은 이런 것들을 스스로 배운다. 한국의 아이들보다 뒤늦게 익숙해지고 어떤 사실들은 훨씬 늦은 나이게 깨닫게 되겠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언제나 스스로 깨닫고 성장한다. 프랑스 부모들에게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이성적인 개체로 인식한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는 새로운 룸메이트의 자격을 얻는다.
어른의 시간
프랑스인들은 '어른의 시간'을 가끔씩 얻는 특권이 아니라 기본적인 필요로 간주한다. 이는 실제로 극명한 사실인데, 부모는 아이에게 '지금은 취침 시간이고, 지금부터는 부모의 시간'임을 알린다. 이는 이제 우리는 너와 놀아주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고, 부모는 부모만의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요구가 가능한 것은 부모와 아이, 서로 간의 예의와 존중하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고, 그것을 존경(?)한다. 프랑스인들은 아이들이 아는 어른에게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특히 어른이 먼저 아이에게 인사할 때는 더욱 그렇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도,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이 규칙은 언제나 지켜진다.
이렇게 사회 전반적으로 깔린 통념은 어릴 적 한계 설정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모든 프랑스 부모에게는 자신들만의 한계가 있고 이것을 아이들에게 알린다. 부모들은 이 한계 설정을 기반으로 훈육을 한다. 아이들은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무관용의 한계를 일찍이 경험한다.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부모에게는 아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이들이 그럼에도 불만이 없는 이유는 한계 내에서의 거의 무한정한 자유 때문이다. 아이들은 정당하지 않은 부모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고, 초콜릿을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것과 같이 충분히 자신의 충동적인 욕구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 장난감을 요구하는 것도 아이들의 권리이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부모의 권리이다. 이 두 권리 사이에 마찰이 생길 때, 그들은 서로의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한쪽은 다른 한쪽의 권리를 인정한다.
나는 벌써부터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좋다. 물론 속에서 울화고 올라올 때도 있고, 가끔은 소리도 지르고, 바쁜 아침 시간에는 참을성에 한계를 느끼지만, 그래도 내 아이는 충분히 건강하고, 독립적이고,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 나는 프랑스 부모들의 육아법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길거리에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내고 떼쓰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먹을 먹지 않는 아이 때문에 고민한다. 여기나 저기나 모두 부모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두 말한다. 부모가 되기로 한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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