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세 살은 꼭 세 살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아마도 아이와의 전쟁(?) 같은 훈육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미운 세 살 (두 돌이 지난) 아이를 육아하다 보면 느끼게 되는 건데 세 살짜리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생각만큼 엄청 힘들지는 않다. 다른 부모들의 미운 세 살 아이들의 평가에 비해서.
종종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아이들을 부모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비합리적인 작은 괴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과장이 심하네'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그 글을 쓴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어린아이와 함께 생활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평화로울 수만은 없으니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
전 세계 많은 부모들이 두려워하는 발달 단계를 혼자서 피해 가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프랑스 부모들은 미운 네 살은 미운 세 살에 비해 조금 다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독특한(?) 독립적인 양육방식 덕분에 그 격정적인 시기를 조용하게 건너뛰기도 하지만 충분히 시끄럽더라도 주변의 부모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전 세계 많은 부모들이 두려워하는 발달 단계를 혼자서 피해 가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프랑스 부모들은 세상 편하게 육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길거리에서 화를 내기도 하고, 마트에서 우는 아이 때문에 곤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특히 네 살 (프랑스에서는 세 살) 아이를 데리고 외식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네 살이라서 세 살보다는 다른 점들이 많다. 우선 아이와 대화가 가능하다. 만 세 살 정도가 되면 말기를 알아듣기 시작하는데 이 무렵이면 제법 이성적인 대화도 가능해진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도,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도 있다. 확실히 긍정적인 변화 같이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자신의 의사를 보다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는 변덕스러운 자신의 심적 변화도 함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는 보통 빵이 이상하게 잘렸다거나, 컵에 얼룩이 있다거나, 날씨가 너무 좋다거나, 혹은 반대로 날씨가 너무 나쁘다는 등의 이유로 문제라고 말한다. 가끔은 부모에게 상처를 부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육아를 훨씬 더 도전적으로 만든다.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무한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안아주지 못해서,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해서 이런 요구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아이가 부모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안다는 사실이다. 고의는 아니지만 충분히 의도가 보일 정도로 아이들은 부모를 자극한다. 하지만 네 살이 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화가 났을 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주로 '미워', '싫어', '저리 가', '보고 싶지 않아'와 같은 말들을 한다. 단순히 빵이 이상하게 잘렸기 때문에...
프랑스 아이들은 만 3세부터
학교(école maternelle)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견을 스스로 표현하는 훈련 시작
아이가 더 자라면 힘도 세지고 목소리도 커진다. 네 살 아이들은 부모가 언제 제일 곤욕스러워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 특히 더 짜증을 내거나 크게 소리를 지를 때가 많다. 슈퍼마켓, 백화점, 식당, 박물관, 도서관, 버스, 지하철 등등... 아이들은 유독 더 관심을 받기 위해 행동한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네 살이 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충분히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서투르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스스로 관리하고 싶어 한다. 만 3세부터 등교하는 학교(école maternelle)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견을 스스로 표현하고 욕구를 조절하는 훈련을 시작한다.
네 살 아이들이 이성적일 거라고 기대하는 부모들이 있다. 말도 잘하고, 대화도 되고, 과거 일들을 제법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 네 살의 아이들은 내면의 욕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아이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아이들은 부모가 언제 무슨 일을 했을 때 화를 내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세 살 아이들은 실수를 하면 당황해서 그 자리에 얼어서 부모를 빤히 쳐다보고 있지만 네 살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알면서도 한다. 그리고는 너무 당당하다. 마치 '그러면 안 된다고 하니까 해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할 거예요. 왜냐면 하고 싶거든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네 살 아이들의 협상 기술에 많은 부모들이 놀란다.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아주 고급 협상 기술을 스스로 터득한다. 아침에 등원 준비를 할 때, 간식을 먹을 때, 목욕을 할 때, 집에 가기 싫을 때, 잠을 자야 할 때 등 그들은 기발하고 얼토당치 않은 이유로 협상을 시도한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상관없겠지만 생활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등원 시간에 늦지 않아야 하고, 식사 시간이 너무 늦어지면 안 되고, 밤에 너무 늦게 잠이 들면 분명 내일 아침에는 더 큰 수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부모들은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매우 자유롭다. 안 씻어도 되고, 밥은 먹지 않아도 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늦게 자도 괜찮다. 아이들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몸소 느낄 수 있게 알려준다.
네 살 아이들의 권력에 대한 싸움은 계속된다. 부모의 말에 무조건 듣지 않거나, 가끔은 무조건 반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들이 원치 않은 행동이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그렇게 행동한다. 더욱이 아이들은 이제 부모의 도움 따위는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계단을 내려올 때 더 이상 손을 잡으려 하지 않고, 간식을 먹을 때도 먹여주길 거부한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능숙한 건 아니다. 아직도 숟가락질은 서툴고, 샐러드는 먹지 않으며, 칼로 스테이크를 자르지 못한다.
프랑스 부모들의 네 살 아이 대처법
루틴
프랑스 아이들은 일찍부터 루틴이 있다. 정해진 루틴은 아이들에게도 무척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부모들에게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저녁 시간에 놀다가도 '양치하고, 책을 읽을까?'하면 이후에 일어날 일을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5분만 더 놀고 자겠다고 대답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취침이다. 낮잠을 반드시 자야 하고 낮잠에서 깨어나는 시간도 일정하다. 시간을 정해두고 자는 게 아니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낮잠을 재운다. 늦게 잠들었다면 30분만 재우고 깨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루틴에서 벗어났을 때, 혹은 루틴을 따를 수가 없는 상황이 되면 아이들은 반대로 짜증을 낸다. 휴가 중이라 낮잠을 자지 못했다면 저녁이면 짜증을 부려대기 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루틴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모와 아이 모두 하루를 더 쉽게 보낼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한계 설정
프랑스 부모들은 모두 자기들만의 한계가 있다. 부모 한쪽에서 주로 한계를 설정하고 다른 한쪽이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 두 명 자신만의 한계가 있다. 그 한계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제약이란 거의 없다. 이러한 한계 설정은 일상생활에서도 함께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유치원에 가기 전 아침에 아이가 양치를 하는 루틴이 있다면, 하루 이틀 아이가 하기 싫다는 날에는 양치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계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규칙에 따른다. 저녁에 아이가 잘 시간이 되었다면, 문을 닫고 나와 자기 일을 한다. 아이가 잠이 오지 않는다며 거실로 나와 놀아 달라고 하더라도 놀아주지 않는다. 놀이 시간은 끝났으니 부모에게는 더는 놀아줄 의무도 없고, 아이에게도 놀아달라고 요구할 권리도 없다고 말한다.
미리 알려주기
그렇다면 아이가 5분 만을 끊임없이 요구하면 어떨까? 프랑스 부모들은 시간이 허락된 상황이라면 5분 만을 무한 받아준다. 아이의 정당한 요구에는 무제한 자유롭게 대한다. 하지만 더는 아이와 놀아 주지 않는다. 5분만 더 놀아주세요는 받아들여질 수 없지만, 5분만 더 놀겠다는 가능하다.
똑같이 부모는 아이에게 5분 뒤에 집에 가야 한다고 요구한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5분만 더 널고 집에 가야 한다고 요구한다. 혹은 책 한 권만 더 읽고 밤에 불을 끌거라 말하고, 브로콜리 다 먹고 나서 디저트를 먹을 거라고 알려준다. 이런 약속이 처음부터 잘 지켜질 일은 없다. 또, 부모가 상황에 따라 아이들의 '한 번만 더' 요구를 무작위로 들어주는 경우라면 실효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네 살의 아이들은 이미 예측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속삭이듯 말하기
프랑스 부모의 집에서는 부모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일이 거의 없다. 부모의 고함소리가 들린다면, 무척 긴급한 상황이거나, 무척 큰 잘못을 한 심각한 상황이다. 아는 친구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거나 위협하는 행동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속삭이듯 말하는 편이 네 살 아이가 더 잘 듣는다면서. 그의 방법은 이렇다. 1. 아이 눈높이에 앉아 눈을 맞춘다. 2. 웃지 않는다. 굳이 심각한 표정까지 지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장난스러운 대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얼굴로 한다. 3. 자신의 이야기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안 돼'라는 짧은 단어 대신,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또한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는 대화를 섞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네가 지금 장난감을 더 가지고 놀고 싶은 거 알아. 아빠(혹은 엄마)가 그만 치우고 자야 한다고 말하니까 속상하고 슬플 거야.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어.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은 이제 그만 치우고 침대로 가서 누워.'
놀이 시간을 요구할 권리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와 잘 놀아주지 않는다. 무론 케바케지만 우리만큼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놀이 시간은 있다. 프랑스 아이들도 자신과 놀아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매번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부모가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지금은 무슨 이유로 놀아줄 수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대화가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들에게도 놀아달라고 요청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모에게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안다. 놀이 시간(정해진 시간이 있거나 놀아줄 수 있는 여건이 될 때)에는 전적으로 아이들의 놀이에 전념한다. 휴대폰으로 보면서 아이들과 놀아준다거나, 커피를 마시는 중간중간 아이들의 책을 읽어주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은 그들에게는 이도저도 아닌 쓸모없는 시간으로 취급받는다.
타임 아웃
네 살 감정 기복에는 장사가 없다. 널뛰는 아이의 감정에 모든 걸 맞춰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간혹 아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의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이럴 때 '타임 아웃'을 사용한다. 프랑스 부모들만의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도 아이를 진정시키는 제법 유용한 방법으로 통한다. 타임 아웃은 별거 없다. 아이가 화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일정 공간에서 30까지 세고 나오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그들의 방에서 진정이 될 때까지 두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를 방에 혼자 두고 무작정 진정될 때까지 감정을 혼자 추스르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숫자를 세는 방법을 더 좋아한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아직 숫자를 모를 때는 모래시계나 타임타이머를 사용했었다. 30초, 1분, 혹은 3분 시간을 맞춰놓고, 알람일 울릴 때까지 여기서 진정하고 있으라고 시켰다. 지금은 화가 난 아이에게 10까지 세라고 말한다. 1부터 10까지 세는 데도 효과가 있다.
다행히 내 아이는 아직 폭력성을 보이지는 않지만 지인의 아이는 네 살 무렵 극도로 화를 내고, 비명을 지르고, 벽을 두드리거나, 문을 발로 차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이제 진정할 시간'라고 말하며 숫자를 셀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를 모퉁이까지 데려가서 그의 어깨에 팔을 얹고 아이와 함께 숫자를 셌다고 한다. 그래도 진정이 안 될 때는 무릎을 꿇고 꽉 안고는 숫자를 세기도 했다고 알려주었다.
숫자가 끝나면 아이에게 이제는 괜찮은지 물어본다. 진정이 되고 대부분 괜찮다고 대답을 하는데, 상황이 끝난 듯 보이면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주의를 전환한다. '아빠랑 책 읽을래? 아니면 공놀이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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