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초등학교라고 하면 왠지 한국보다 조금 더 여유로운 풍경이 떠오른다. 학교가 끝난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고, 방과후 돌봄에서 간식을 먹으며 천천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 말이다.
한국처럼 하교 후 곧장 영어학원, 수학학원, 태권도장, 피아노학원으로 이동하는 장면과는 조금 다를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의 한 지방도시에서 흥미로운 논의가 나왔다. 파리 북서쪽에 있는 퐁투아즈(Pontoise) 시가 일부 초등학교에서 기존 방과후 돌봄 대신 지도학습을 실험해 보겠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아이들의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였다.
프랑스도 이제
방과후 시간이
학습 시간으로 바뀌고 있는 걸까?
물론 이 사례 하나만으로 프랑스 교육 전체가 한국처럼 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프랑스의 방과후 돌봄이 전국적으로 학습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작은 뉴스 안에는 꽤 큰 질문이 들어 있다. 아이가 학교를 마친 뒤의 시간은 누구의 시간일까.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이어야 할까, 부족한 공부를 채우는 시간이어야 할까.

périscolaire이란?
프랑스에는 périscolaire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로 정확히 옮기기는 어렵지만, 학교 수업 전후나 점심시간, 수요일, 방학 기간 등에 이루어지는 학교 주변 돌봄 활동을 뜻한다.
프랑스 초등학생의 하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꽤 길 수 있다. 정규 수업은 보통 오후에 끝나지만, 부모의 근무 시간과 아이의 하교 시간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교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간에 남아 방과후 돌봄을 이용한다.
이 방과후 돌봄은 일부 가정만 이용하는 예외적인 서비스가 아니다. 프랑스 가족수당금고 Cnaf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2023~2024학년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의 89%가 자녀가 정기적으로 방과후 돌봄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 89%: 유치원·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가 정기적으로 방과후 돌봄을 이용한다고 응답
- 80%: 등교일마다 방과후 돌봄을 이용한다고 응답
- 78%: 점심시간에 아이가 학교 급식 또는 집단 돌봄을 이용한다고 응답
- 34%: 저녁 방과후 돌봄을 매일 또는 거의 매일 이용한다고 응답
이 숫자를 보면 프랑스의 방과후 돌봄이 단순한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아이의 하루와 부모의 노동시간을 이어 주는 중요한 생활 인프라인 셈이다.
그런데 이 시간은 원래 교실에 앉아 공부를 더 하는 시간이 아니다.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놀이를 하고, 만들기나 체육 활동을 하기도 한다.
숙제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루의 긴장을 풀고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안전하게 머무는 시간에 가깝다.
Cnaf 조사에서도 부모들이 방과후 돌봄의 장점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학습 보충이 아니었다. 부모의 60%는 아이가 공동생활을 배운다는 점을, 49%는 아이가 즐겁게 논다는 점을 주요 장점으로 꼽았다.
다시 말해 프랑스 부모에게 방과후 돌봄은 공부 이전에 사회성, 놀이, 안전한 기다림의 시간에 가깝다.
그래서 기존 방과후 돌봄을 지도학습으로 바꾸자는 논의는 단순한 프로그램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이의 하루 중 가장 느슨해야 할 시간이 조금 더 학습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방과후에 학습 시간을 넣으려 할까?
퐁투아즈 시가 이런 실험을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아이들의 학력 저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도 기초학력, 특히 수학과 읽기 능력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 우려는 단순한 인상만은 아니다. 2025년 프랑스 전략기획기관 France Stratégie는 프랑스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에 대한 분석을 발표했다.
- TIMSS 2023에서 프랑스 CM1, 즉 한국의 초등학교 4학년 정도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수학 평균 점수는 484점이었다.
- France Stratégie는 이 점수가 참여국 평균보다 41점 낮다고 설명했다.
- 수학 ‘고급 수준’에 도달한 프랑스 CM1 학생은 3%에 그쳤다.
- 같은 항목에서 유럽연합 참여국 평균은 9%였다.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PISA에서도 수학 하락세는 확인된다. France Stratégie는 프랑스 학생들의 PISA 수학 평균 점수가 2003년 511점에서 2022년 474점으로 낮아졌다고 정리했다.
물론 프랑스 교육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프랑스 교육부의 2025년 전국 평가 자료를 보면, 초등학교 1학년 CP 단계에서는 일부 수학·읽기 기초 능력이 2019년보다 개선된 지표도 있다.
예를 들어 CP의 문제 해결 능력에서 만족 수준에 도달한 학생 비율은 2019년 66.1%에서 2025년 69.3%로 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CE1에서는 프랑스어 일부 능력이 2019년보다 하락했고, CM2에서는 수학의 여러 영역에서 교육우선지역 학생과 일반 공립학교 학생 사이의 격차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즉 프랑스의 학력 논쟁은 단순히 “모든 것이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좋아지는 지표도 있지만, 수학·기초학력·지역 격차에 대한 걱정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쪽에 가깝다.
문제는 공부가 필요하냐 아니냐가 아니다.
아이의 쉬는 시간을 어디까지 공부로 바꿀 수 있느냐다.
프랑스 부모들도 걱정한다
기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일부 학부모들이 지도학습 자체보다 기존 방과후 돌봄의 유연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방과후 돌봄은 맞벌이 부모에게 단순한 부가 서비스가 아니다. 부모가 퇴근하기 전까지 아이가 안전하게 머무는 공간이다.
특히 초등학생은 혼자 집에 있기 어렵고, 등하원 동선도 부모의 일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아이가 몇 시에 끝나는지, 어디에서 기다리는지, 부모가 몇 시까지 데리러 갈 수 있는지는 한 가족의 하루 전체를 좌우한다.
Cnaf 조사에서도 이 점은 숫자로 확인된다. 맞벌이 가정이나 한부모 취업 가정처럼 부모가 일하는 가족의 경우, 점심 방과후 돌봄 이용률은 92~93%에 이르렀다.
저녁 돌봄 역시 이런 가정의 거의 3분의 2가 매일 또는 때때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아침 돌봄도 약 40%가 이용했다.
이 수치는 방과후 돌봄이 프랑스 부모에게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인지 보여준다. 아이를 맡기는 시간이 사라지거나 유연성이 줄어들면, 그 변화는 곧바로 부모의 출퇴근, 근무 지속, 가족의 하루 리듬에 영향을 준다.
부모들이 방과후 돌봄에 만족하는 이유도 바로 이 생활 리듬과 연결된다. Cnaf 조사에서 부모의 88%는 아침과 저녁 돌봄 시간표가 자신의 일정과 조직상의 제약에 맞는다는 점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다만 이 만족은 “무엇이든 맡기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오래 붙잡아 두는 시간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고, 아이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다. 동시에 부모의 노동시간과도 맞물려야 한다.

너무 익숙한 장면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많은 부모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하교 시간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보다 아이가 일찍 끝나는데, 부모의 퇴근 시간은 그대로다. 그래서 아이는 돌봄교실에 가거나, 방과후 수업을 듣거나, 학원 차량을 타고 이동한다.
때로는 학습 목적보다 돌봄 목적이 먼저인데도, 선택지는 학원으로 이어진다.
- 초등돌봄교실에 자리가 있는지 확인한다.
- 방과후학교 수업 시간을 조합한다.
- 학원 차량 동선을 맞춘다.
- 부모 퇴근 전까지 아이가 머물 공간을 찾는다.
- 아이가 너무 피곤하지는 않은지 다시 걱정한다.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선택이라기보다 조합에 가깝다.
아이를 몇 시까지 어디에 둘 수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이동은 안전한지, 아이가 너무 피곤하지는 않은지 계속 계산해야 한다.
한국의 방과후는 이미 학습과 돌봄이 뒤섞여 있다. 방과후학교는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수업의 성격이 강하고, 학원은 학습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돌봄의 역할도 한다.
부모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도 반드시 선행학습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가 혼자 집에 있기 어렵고, 부모가 퇴근하기 전까지 안전하게 머물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프랑스의 방과후 지도학습 논의는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프랑스는 한국만큼 사교육 중심 사회는 아니지만, 결국 같은 고민 앞에 서 있다.
아이의 방과후 시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바빠졌을까?
프랑스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프랑스 퐁투아즈의 실험은 작은 지역 뉴스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질문이 들어 있다.
- 아이의 학교가 끝난 뒤 시간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 그 시간은 안전하게 맡기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 기초학습을 보완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할까?
- 부모의 퇴근 시간과 아이의 생활 리듬은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방과후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프랑스와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프랑스는 공적 돌봄과 지자체 역할이 크고, 한국은 사교육과 민간 돌봄이 방과후 시간을 많이 차지한다.
하지만 부모가 느끼는 고민은 비슷하다. 아이를 안전하게 맡기고 싶고, 공부도 뒤처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동시에 너무 지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프랑스의 학력 지표를 보면 방과후에 학습 지원을 넣으려는 문제의식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TIMSS와 PISA에서 드러난 수학 성취도 하락, 초등·중등 단계의 기초학력 격차는 프랑스 교육계가 고민할 만한 문제다.
하지만 Cnaf의 방과후 돌봄 데이터를 함께 보면 다른 그림도 보인다. 프랑스 부모들이 방과후 돌봄에서 기대하는 것은 아이가 공동생활을 배우고, 즐겁게 지내고, 부모의 일정과 맞물려 안전하게 머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은 하나다. 방과후 시간을 공부로 채울 것인가, 놀이로 비워 둘 것인가가 아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과 쉼을 어떻게 함께 설계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어쩌면 방과후 시간에 대한 부모의 고민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지도 모른다. 다만 그 고민을 사회가 어떻게 나누어 갖는지가 다를 뿐이다.
프랑스의 이번 논의는 우리에게도 좋은 거울이 된다. 우리는 아이의 방과후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이가 학교를 마친 뒤에도 계속 무언가를 해야 안심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에게 필요한 학습 지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방과후 시간에는
공부만이 아니라 쉼도, 돌봄도, 균형도 필요하지 않을까.
※ 참고 자료
- Le Parisien, 「Une “baisse du niveau très claire” dans les écoles de Pontoise ? La mairie veut tester l’étude à la place du périscolaire」, 2026.06.05
- France Stratégie, 「Niveau scolaire : faut-il s’inquiéter ?」, 2025
- Ministère de l’Éducation nationale, 「Évaluations nationales de septembre 2025」
- Cnaf, 「Baromètre des temps et activités péri et extrascolaire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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